적립식이 나을까, 아니면 하락장에서 사는 것이 나을까.
투자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밤잠을 설치며 한 번쯤 고민했을 질문입니다. 시장의 파도를 타본 이들에게 이 질문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를 넘어, 투자의 철학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두 전략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매력과 치명적인 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적립식은 시장의 소음에서 귀를 닫고 정해진 시간에 기계적으로 몸을 싣는 방식입니다. 반면, 하락매수는 폭풍우가 치는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가장 낮은 지점에서 기회를 낚아채는 방식입니다.
결국 이 논쟁의 본질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시장의 타이밍을 겸손하게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예리하게 포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본능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이성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이 승자의 길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됩니다.
1. 전략의 출발점과 경쟁 방식
두 전략의 경쟁 방식은 명확합니다.
적립식은 변동성을 분할하는 전략이고,
하락매수는 변동성을 이용하는 전략입니다.
적립식은 시장 가격과 무관하게 시간을 기준으로 투자합니다.
반면 하락매수는 가격을 기준으로 투자합니다.
시장 가격이 높든 낮든 적립식은 매달 매수하며,
하락매수는 일정 수준의 조정이 발생해야 움직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락매수가 유리해 보입니다.
가격이 떨어졌을 때 사면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투자의 결과는 가격 변동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시장의 구조적 방향, 금리 상태, 정책 환경, 기술 사이클, 자금 흐름,
심지어 투자자의 실행 능력까지 포함됩니다.
이 지점에서 단순한 수익률 비교만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2. 실험 결과는 왜 단서일 뿐인가
최근 카카오페이증권에서 SPY를 대상으로
적립식과 하락매수를 비교한 실험 결과가 소개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관찰이지만, 이 실험은 어디까지나
조건이 통제된 특정 구간을 전제한 사례에 가깝습니다.
실험이 다루는 범위는 명확하지만,
실제 시장은 그보다 훨씬 많은 변수를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금리 경로, 정책 변화, 섹터 자금 흐름,
ETF별 변동성, 환율, 투자자의 현금 비중,
투자 기간, 세금 구조 등이 추가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어느 시기에는 이런 결과도 나올 수 있다”는 단서이며,
전략의 우열을 결정하기 위한 결론은 아닙니다.
3. ETF의 성격과 전략 궁합
전략의 승패는 자산군의 성격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SPY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해온 인덱스 ETF입니다.
이런 자산은 적립식과 궁합이 좋습니다.
상승하기 전 조정 구간에서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하는 구조가
상승 구간에서 자연스럽게 수익으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QQQ는 더 개성적인 ETF입니다.
테크 중심, 변동성 높음, 정책·금리·투자 사이클에 민감합니다.
이런 자산은 때로는 적립식이, 때로는 하락매수가 우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2년과 같은 금리 급등기에서는
딥매수가 유리한 구간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반면 2023년 이후 AI·CAPEX 축 중심으로 자금이 이동한 시기에는
적립식이 훨씬 편안하게 수익을 냈습니다.
SCHD는 또 다릅니다.
배당 ETF 특성상 배당 재투자가 핵심이기 때문에
시간을 길게 가져갈수록 적립식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가격 조정보다는 보유 기간이 실제 수익에 더 크게 기여합니다.
JEPI나 JEPQ 같은 월배당 ETF는 더욱 그렇습니다.
옵션 프리미엄이 월 단위로 떨어지기 때문에
적립식이 구조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하락매수 전략은 수익 대신 기회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SGOV 같은 초안정 채권 ETF는 전략의 의미 자체가 달라집니다.
여기서는 적립식 vs 하락매수 논쟁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단기채 ETF는 기본적으로 현금 관리 + 금리 환경을 반영하는 수단입니다.
4. 시장 사이클이 전략의 승자를 결정한다
ETF의 성격이 전략의 궁합을 결정한다면,
시장 사이클은 전략의 승자를 결정합니다.
2022년처럼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는 시기에는
딥매수 전략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가격 충격이 집중되는 구간에서는 타이밍을 통한 이익이 가능합니다.
2023년 이후처럼 AI·전력·데이터센터·반도체 CAPEX가
투자 사이클을 주도하는 구간에서는 적립식이 더 강했습니다.
이러한 구간은 가격이 떨어질 때 잠깐이고 오히려 회복 속도가 빠릅니다.
딥매수를 시도하기에는 반등이 너무 기민하게 일어나며,
반등을 확인하는 순간 이미 가격이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 환경 역시 전략에 영향을 미칩니다.
IRA·CHIPS·방산·인프라 예산처럼
정책이 산업을 견인하는 구간에서는
조정 구간이 짧고, 상승이 단단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적립식이 편안한 전략입니다.
5. 실행의 문제: 전략보다 어려운 것은 ‘투자자’입니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는 전략의 실행 난이도입니다.
하락매수는 이론적으로는 훌륭한 전략입니다.
가격이 떨어진 시점에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투자자는 바닥처럼 보이는 가격에서도 매수를 망설입니다.
“더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행동을 정지시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반등이 시작되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매수를 포기합니다.
이 과정은 반복되며 전략은 실행되지 않습니다.
적립식은 정반대입니다.
전략이 지루하고 가격과 무관하게 진행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장 변동을 견디는 체력이 필요 없습니다.
심지어 자동이체로 설정하면 전략을 유지하는 데
투자자의 의지가 거의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장기 투자에서 매우 큰 이점입니다.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데 중요한 것은
완벽한 전략이 아니라 유지 가능한 전략입니다.
6. 변동성의 활용과 회피
하락매수는 변동성을 활용하는 전략이고,
적립식은 변동성을 회피하는 전략입니다.
이 차이는 시장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승자가 바뀝니다.
변동성이 크고 방향성이 약한 시장에서는
하락매수가 상대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가격이 넓은 범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매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변동성이 크지만 방향성이 강한 시장에서는
적립식이 압도합니다.
하락매수를 준비하는 동안 가격이 빠르게 회복하거나
오히려 신고가를 갱신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AI·반도체·데이터센터처럼
정책·기술·자본이 명확하게 향하는 구간에서는
딥매수 전략이 한 번도 실행되지 않고 시장이 끝나기도 합니다.
7. ‘승자’를 정의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승자를 판정해야 할까요.
단순히 수익률만 비교한다면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투자자가 같은 시간대에, 같은 금액으로,
같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익률만으로 결론을 내릴 경우 현실과 어긋납니다.
예를 들어 월급으로 투자하는 개인에게는
타이밍 기반 전략보다 적립식이 훨씬 실행력이 높습니다.
반대로 이미 현금을 확보한 투자자라면
변동성을 이용하는 전략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기관 투자자는 정책·금리·사이클 기반으로 움직이며
전혀 다른 기준으로 전략을 선택합니다.
즉, 전략의 승자는 자산이 아니라 투자자에게 있습니다.
전략의 선택은 시장이 아니라 투자자의 조건에 의해 결정됩니다.
8. 시장 상태에 따라 전략의 승자가 달라진다
전략의 효율은 기간이 아니라 시장 상태에 더 민감합니다.
2022년은 금리 상승이 밸류에이션을 압축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기술·성장 자산의 멀티플이 조정되면서 방향성은 약했고 변동성은 컸습니다.
이러한 구간에서는 가격이 여러 차례 내려왔다가 반등하는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하락 매수 전략이 상대적으로 진입 기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반면 2023년 이후는 AI·전력·반도체·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CAPEX 사이클이 형성되는 초기 구간이었습니다.
기술·전력·인프라가 동시에 움직이는 구간에서는
조정이 짧고 회복이 빠르며 자금 유입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가격을 기다리는 전략보다
시간을 분할하는 적립식이 안정적으로 작동합니다.
2025~2027년은 CAPEX와 정책, 방산·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함께 작동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장은 단순 조정에 그치지 않고 자산의 가치 자체가 한 단계 점프하는 리프라이싱(재평가) 구간에 진입합니다
조정의 길이는 짧아지고 상승이 분산되기보다는 특정 섹터로 집중되며,
딥매수는 실행이 어렵고 실행되더라도 타이밍 리스크가 커집니다.
반대로 적립식은 조정 여부와 무관하게 포지션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실행 비용이 낮습니다.
물론 금리 경로, 지정학, 환율, CAPEX 속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고환율이 지속되는 시기에는
적립식과 하락매수의 효율이 또 다르게 나타납니다.
고환율은 해외 ETF 투자자의 진입 비용을 높이고,
환차손·환차익이 전략의 수익률을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적립식은 고환율의 부담을 시간에 분할해 흡수하는 방식입니다.
환율이 높은 시점에 전액을 매수하기보다
달러와 ETF를 동시에 분할로 확보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락매수는 가격 조정과 환율 조정이 동시에 발생할 때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지만
그 구간은 짧고 예측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격과 환율이 모두 조정되는 시점을 기다리는 전략은
대부분 실행되지 않고 끝이 납니다.
고환율 시기에는 전략의 우열보다
현금을 언제, 얼마나, 어떤 비율로 자산으로 전환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시장도 어렵지만 환율은 더 예측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략의 승자는 수익률이 아니라 실행력이고,
실행력의 승자는 타이밍이 아니라 분할입니다.
고환율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최저가 매수'라는 오만을 버리고, '분할 매수'라는 겸손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 시장에 끝까지 살아남는 비결입니다."